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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팅 천재가 명품을 너무 사랑하면 벌어지는 일 ‘레이디 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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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넷플릭스 '레이디 두아' 스틸 컷.

설 연휴 최고 화제작에 오른 <레이디 두아>(넷플릭스)는 럭셔리 패션계가 배경이다. 신분을 속이고 사기를 치는 여자가 나온다는 점에서 <화차>, <안나>, <애나 만들기> 등을 연상시킨다. 주인공이 고가 패션 브랜드를 위조해서 부유층을 농락하는 설정 및 상세 수법은 2006년 벌어진 빈센트앤코 사건을 참고한 듯 보인다. 경기도 시흥에서 제조한 시계를 100년 전통 스위스 시계라고 팔아먹은 빈센트앤코 사건은 다큐멘터리로 제작해도 흥미로울 소재인데, <레이디 두아>는 가상의 팜므파탈 캐릭터를 내세워 이 소재에 담긴 ‘욕망’이라는 키워드를 극적으로 강조했다. 미스터리 추리극으로는 허점이 많지만 캐릭터의 매력과 그가 저지르는 파격을 감상하는 재미로 완주하게 된다.

드라마는 압구정 명품관 앞 하수구에서 신원 미상의 시체가 발견되면서 시작한다. 형사 박무경(이준혁)은 시체 옆에 놓인 에르메스 백을 단서로 사건을 추적해간다. 그 가방의 최초 구매자로 기록된 뷰티 브랜드 창업자 정여진(박보경)은 그것을 부두아라는 명품 브랜드 수입업자 사라 킴(신혜선)에게 주었다고 진술한다. 정여진이 묘사하는 사라 킴은 영국 명문 대학을 졸업한 교포다. 명품관에서 하루 수억원을 쓸 정도 재력이 상당하고 상류층 사교계에 주눅 들지 않는 당당함, 탁월한 마케팅 감각을 지닌 인물이다. 졸부로 돈은 있지만 고급스럽지 않은 게 콤플렉스인 여진은 회삿돈 150억원을 횡령해 부두아에 투자했다. 그런데 사라 킴은 행정 시스템상 존재하지 않는 인물이다.

넷플릭스 ‘레이디 두아’ 스틸 컷.
넷플릭스 '레이디 두아' 스틸 컷.
The Art of Sarah Shin Hae-sun as Sarah Kim in The Art of Sarah Cr. Kim Eun Jeong/Netflix. © 2026

박무경은 사라 킴이 여러 번 신분 세탁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명품 매장에서 화장실도 못 가고 일하다가 도난 사건의 책임을 떠안고 빚더미에 앉은 목가희, 구매대행 사기를 저지르고 자살한 청담여신, 사채 빚 때문에 술집에 다니다가 돈 많은 남자와 위장 결혼한 두아… 주인공은 단계를 넘어갈 때마다 럭셔리 패션계의 유통 구조, 경찰 수사의 허점, 신분 세탁 방법, 상류층의 심리 등을 체득하며 사라 킴으로 진화한다. 각 시퀀스는 전체 이야기 구조와 별개로 완결된 매력을 지닌다. 배경이 배경인 만큼 볼거리가 화려하고 신혜선의 연기도 흥미롭다.

주인공은 궁핍한 환경을 비관하다 미쳐버린 슬픈 광인일 수도, 허영심에 잠식된 음흉하고 불쾌한 영혼일 수도, 남자를 조종해서 목적을 달성하는 색기 넘치는 팜므파탈일 수도, 눈치 빠르고 영리한 승부사일 수도 있다. 어떤 면모를 강조하는가에 따라 극의 분위기도 달라졌을 테다. 신혜선의 사라 킴에게서는 아무리 실패해도 끝없이 되살아나고 갈망하는 꿋꿋함이 돋보인다. 건강해 보이기까지 할 정도의 생명력이다.

넷플릭스 '레이디 두아' 스틸 컷.
넷플릭스 '레이디 두아' 스틸 컷.

번번이 파괴적인 방식으로 하나의 신분을 지우고 다음으로 이행해온 주인공은 극 후반 다시 한번 사라 킴을 지우기 위해 무경 앞에 제 발로 나타난다. 가뜩이나 위태롭던 수사물이 갖춰야 할 논리성은 이 대목부터 완전히 무너진다. 무경은 마치 살인 사건이 아니라 금융 범죄 담당 형사처럼 취조한다. 주인공의 주장에 따르면 죽은 자와 죽인 자 중 한 명은 사라 킴, 다른 한 명은 비슷한 외모로 사라 킴의 신분을 훔치려던 주민등록 미신고자다. 누가 누구인지는 증인들을 불러서 대조하거나 수술흔을 확인하면 될 일인데 무경은 너무 쉽게 수사를 포기해버린다. 무경은 사라 킴만큼이나 욕망과 콤플렉스에 사로잡힌 인물이고 남은 시간도 별로 없어 얼렁뚱땅 이 건을 해결하고 승진이나 하자고 결심했을 수 있다. 하지만 내내 용감하게 굴던 신입 형사나 무경의 허술한 심문을 지켜보던 동료들도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라고 체념해버리는 건 황당하다.

굳이 따지면 추리 구조 말고도 허술한 부분은 많다. 우선 이리저리 꼬인 플롯 때문에 타임라인을 정리하기 어렵다. 명품 업계 묘사도 맛만 낸 수준이다. 헤리티지 마케팅, 구매 제한, 오픈런, 리셀 문화 등은 현실감이 있지만 주인공이 현금을 싸 들고 에르메스 매장에 가서 가방을 싹쓸이하는 건 믿기지 않는다. 어차피 <레이디 두아>는 완성도와 리얼리티가 중요한 작품은 아니다.

앞서 언급했듯 이 드라마는 타이틀롤의 매력으로 승부한다. 명품 업계는 이 캐릭터에 반짝임을 더해주는 배경이자 선명한 메시지를 부여하는 장치다.

넷플릭스 '레이디 두아' 스틸 컷.
넷플릭스 '레이디 두아' 스틸 컷.

극이 제시하는 주인공 최초의 행적은 프라다 매장 직원이다. 국내 입고도 안 된 신상을 다 꿰고 있는 주인공을 보고 동료는 말한다. “너 오래 못 버티겠다. 그런 말 하는 애들이 꼭 잠수 타고 퇴사하더라고.” 주인공은 “아니요, 전 여기에 뼈를 묻을 거예요”라고 답하지만 결과적으로 동료가 옳았다. 이 문답은 명품 선망이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측정하는 이 시대의 지표임을 지적한다. 주인공은 디올에 어울리는 우아한 레이디가 되고 싶은 꿈이 있었다. 하지만 명품을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 사이 간극은 컸고, 주인공은 이상을 좇다가 현실의 자기 정체성을 파괴하기에 이른다. 현대 소비문화에 대한 엄중한 비판처럼 들리지만, 과연 그런가?

극 중 사라 킴은 부두아 판촉을 위해 가품을 유통시킨다. 가품이 나온다는 것이야말로 부두아가 명품으로 인정받았다는 뜻이고, 열망의 대상이 되었다는 뜻이므로. 이 드라마가 전시하는 명품 업계의 소비자, 판매자, 유통자, 제작자 등은 천박한 속물이거나 궁핍한 노동자다. 전혀 럭셔리하지 않다. 대부분의 인물은 자기 철학과 미학이 아니라 가격표를 기준으로 사물을 판단한다. 요즘 세상에 듣도 보도 못한 브랜드를 들고 와서 유럽 최상류층이 남몰래 사용하던 거라고 사기를 치면 누가 믿겠냐 싶지만, 그런 사기에 넘어가고도 남을 만큼 순진한 사람들이 이 업계에 많다는 것도 인정해야겠다. 그런데 명품 업계를 향한 비난에 가까운 묘사는 아이러니하게도, 부두아와 짝퉁의 관계처럼 이 업계에 대한 대중의 선망과 그것의 도도한 지위를 역설한다. 주인공에게는 그 선망이 파멸에 이르는 병이었지만, 대중은 그런 주인공을 보면서도 그가 걸친 디올 백과 루부탱 구두를 캡처하고 품명을 확인한다. 드라마 밖에서 메시지가 최종 완성되는 구조다. 힘을 줄 곳은 확실히 주고 뺄 곳은 확실히 뺀 영리한 각본이라 해야겠다. 긍정 부정을 떠나 오래 각인될 드라마다.

넷플릭스 '레이디 두아' 스틸 컷.
넷플릭스 '레이디 두아'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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