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컬트 서바이벌 쇼, 이게 된다고?
디즈니+에서 신선한 오리지널 예능을 선보였다.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넷플릭스)의 모은설 작가, <이방인>(Jtbc)의 황교진 PD가 손잡고 만든 <운명전쟁49>다. 점을 소재로 하고, 한국 무속 특유의 키치한 미감이 넘실거리는 만큼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2월 11일 공개된 첫 4개의 에피소드를 보면 오컬트 팬에게는 확실한 호응을 받을 듯하다. 참가자 입장부터 <흑백요리사> 시즌 1의 유비빔 같은 캐릭터만 49명을 모아둔 것 같은 광기 어린 분위기다.
<운명전쟁49>는 여러 방식으로 점을 보는 사람들이 모여 대결하는 형식을 띤다. 만신부터 갓 신내림을 받은 젠지 무당까지 무속인이 가장 많고 명리학, 타로, 수비학, 관상, 족상, 성명점을 보는 점술사도 있다. 누구는 기업 고객이 많다 하고 누구는 연예 기획사에서 많이 찾는다고 한다. 2008년 <스타킹>(SBS)에 ‘아홉 살 아기무당’으로 출연해 “MC몽이 죽을죄를 지었다”고 말한 이소빈, 2024년 11월에 계엄 예언 영상을 유튜브에 올렸다는 인의당은 그 세계에서 유명한 인물인 듯 등장할 때 술렁임이 일었다. 연예인들 사이에서 타로를 잘 보기로 소문난 코미디언 이국주도 패널 대신 49명의 참가자 사이에 앉았다. 크리스천이라면서 이름을 보고 운명을 읽는 엉뚱한 점술가도 있다.
운명을 맞히는 능력을 어떻게 시험하고 그 자리에서 검증해서 게임 형태로 승화시킬 것인가? 그것이 이 쇼의 관건인데, 제작진은 1라운드부터 제법 설득력 있는 방식을 제시한다. 이른바 ‘촉의 전쟁’이다. 망자의 사진과 사주를 보고 사인 알아내기, 5명의 출연자 중 누가 무당인지 맞히기, 돈벼락 맞은 사람과 날벼락 맞은 사람 찾기, 족상과 사주로 노숙자 찾기, 어린 시절 사진과 사주로 현생 맞히기, 사주만 보고 100만 먹방 유튜버 찾기 등 스무 가지 테스트가 빠르게 이어진다. 참가자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답을 내리고, 그중 선착중 7명이 발언 기회를 갖는다. 매 질문당 1명의 승자가 다음 라운드에 진출한다. 점괘가 같을 경우 ‘운명술사’라 명명한 연예인 패널들이 심사로 승자를 가린다. 누가 더 디테일이 뛰어난지, 누가 더 강한 인상을 남기는지가 기준이다. 실력이 비슷할 경우 먼저 발언한 참가자가 이긴다.
따져보면 1라운드 ‘촉의 전쟁’에는 의심 가는 구석이 많다. 참가자들은 스튜디오에 모여 앉아 점을 보는데, 그 과정에서 주변 사람의 독백, 대화, 메모 등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선착순 7명이 공개 발언으로 답을 제시하는 방식 역시 앞선 사람의 답변을 모방할 여지를 준다. 여러 참가자가 비슷한 답을 내놓는 게 오컬트에 과학적인 무언가가 있어서가 아니라 이런 환경 때문일 수 있다는 거다. 망자의 사인을 맞히는 시험에는 뉴스를 열심히 본 사람이라면 기억할 인물이 섞여 있다. 사귀다 헤어진 커플의 재회 의사를 맞혀보라는 질문은 타로술사를 위한 배려처럼 보이는데, 출연자들의 사전 인터뷰와 현장 반응이 일치하지 않아서 누구의 점괘가 맞는지 애매한 상황이 벌어졌다. 결국 사전 인터뷰와 같은 답을 내놓은 이국주가 다음 라운드로 진출했다.
이처럼 토를 달기로 작정하면 한도 끝도 없다. 점이라는 게 원래 그렇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점에 관심을 갖는 이유가 분명 있고, 이 쇼는 그 심리를 정확히 공략한다. 첫 번째 라운드는 사람을 읽는 능력을 검증하는 것이었다. 비결이 신의 뜻이건 사주 통계 분석이건 천부적인 눈치와 분석력이건, 참가자들이 정답에 가까운 추측과 해설을 내놓을 때면 짜릿하다. 무당들이 죽은 사람의 사진과 사주만 보고 사망 현장을 목격한 것처럼 자세히 묘사하는 대목이 특히 신기하다. 죽음을 얘기하다가 곧장 정답을 맞혔다고 자랑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신비로움을 기괴함으로 전환시키기는 하지만 말이다.
두 번째 라운드 ‘기의 전쟁’은 이들의 본업인 운명 상담 능력을 시험한다. 출연자들이 1:1로 서로의 과거와 현재를 읽어내고 고민 풀이를 해주면 ‘운명술사’들이 사전 인터뷰와 대조해 승자를 정한다. 누가 많이 맞혔나도 중요하지만 누가 더 기세가 좋았나가 주요 평가 기준이다. 서로의 영업 비밀을 속속들이 아는 사람들끼리의 자존심 대결. 현란한 퍼포먼스, 기선 제압, 스토리텔링이 쏟아진다. 신비주의에 끌려 이 길을 선택한 사람들이라면 기구한 사연 한둘쯤은 있기 마련이다. 동생의 조현병을 막기 위해 신내림을 받은 남자, 일곱수마다 가까운 사람이 자살하는 환시를 본 후 실제 그 일이 벌어져서 다음 일곱수를 걱정하는 여자 등 극적인 사연이 드러난다. 태아 성별 맞히기에서 승리해 2라운드에 진출한 무당은 이기기 위해 상대를 고르는 대신 ‘내 몸주신이 전할 말이 있다고 한다’며 상대를 지목해 고민 상담을 해주었다. 믿기로 하면 놀라움의 연속이고, 안 믿어도 자극은 폭발한다.
틀린 점괘를 내고 초반 탈락해 영업에 영 재미를 못 본 참가자들도 있지만, 그들조차 이 쇼의 미래는 꿰뚫어본 것 같다. 이 정도면 작두는 무당들이 아니라 <흑백요리사>에 이어 오컬트 서바이벌까지 성공시킨 모은설 작가가 타고 있다고 봐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