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부터 런던까지, 패션 아카이브 답사기
수집가의 영역으로 여겨지던 하이패션 빈티지가 레드 카펫을 지배했습니다.
제니퍼 로렌스는 2024년 베니티 페어 오스카 파티에서 케이트 모스가 입었던 1996 가을 지방시의 화이트 자수 드레스를, 지난해 영화 <다이 마이 러브> 시사회에선 아르마니 프리베 아카이브의 홀터넥 드레스를 선택하며 빈티지에 대한 확고한 취향을 보여주었습니다.
2026년 골든글로브 레드 카펫에서도 아카이브의 존재감은 빛났습니다. 조지 클루니의 그녀 아말 클루니는 피에르 발망의 1957 가을/겨울 컬렉션 레드 드레스를 입고 단숨에 시선을 사로잡았죠. 영화 <마티 슈프림>으로 주목받고 있는 신인 배우 오데사 아지온도 돌체앤가바나의 1990년대 피스를 입어 시선을 끌었습니다. 풍성한 모피 숄과 스커트처럼 넓게 떨어지는 슬랙스로 드라마틱한 실루엣을 자랑했습니다. ‘신상’만 고집하던 시절과 달리 지금 패션계는 희귀한 피스를 앞다퉈 찾아내고 있죠. 이제 아카이브 패션에 대한 관심은 레드 카펫에 머물지 않습니다. 2026년 한 시대를 대표한 디자이너의 아카이브가 전 세계 주요 미술관에서 공개됩니다. 패션은 다시 한번 기록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National Gallery of Victoria, <Westwood | Kawakubo>
영국 출신 디자이너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1970년대 펑크 문화로 패션 혁명을 이끈 인물입니다. 옷을 통해 정치적,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며 세상이 만들어낸 틀을 깨뜨렸죠. 그녀의 타탄 체크, 코르셋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반항과 자유의 상징이었습니다. 동시대 일본 도쿄에서 새로운 반향을 일으킨 디자이너가 있었습니다. 1969년 꼼데가르송을 설립한 레이 가와쿠보입니다. 1981년에는 파리로 진출해 쇼룸을 오픈하고 비대칭 실루엣의 해체주의적 컬렉션을 전개했습니다. 이들은 2002년 협업 후 미술관에서 아카이브로 다시 마주했습니다. 전시에서는 용감하고 대담했던 패션계 두 대모의 작업을 시대별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장소 내셔널 갤러리 오브 빅토리아 기간 4월 19일까지 인스타그램 @ngvmelbourne
MAK Museum, <Helmut Lang: Séance de Travail 1986–2005>
헬무트 랭의 작업을 조명하는 전시가 비엔나 MAK 뮤지엄에서 열립니다. 그는 세련된 디자인과 파격적인 마케팅으로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패션계를 풍미한 디자이너입니다. 1998년 가을 컬렉션을 온라인과 시디롬으로 발표했으며, 뉴욕 옐로 캡과 다큐멘터리 잡지에 광고를 싣는 등 관습을 뒤집었습니다. 현재까지도 높은 가격에 거래되는 아카이브 피스가 그의 영향력을 보여줍니다. 최근 대표적인 아카이브 중고 거래 플랫폼 데이비드 카사반트 아카이브(David Casavant Archive)에서 1999 가을 컬렉션 재킷이 1,000만원대에 판매되었습니다. 은퇴한 그가 2011년 소장품을 기증한 덕분에 MAK 뮤지엄은 약 1만 점에 달하는 아카이브를 보유하게 되었습니다. 전시는 런웨이 영상과 캠페인 이미지, 피팅 폴라로이드, 매장 구조, 아티스트 협업 기록까지 그의 작업 세계를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최대 규모의 아카이브로 구성됩니다. 과거 쇼장과 매장을 정밀하게 재현한 공간이 인상적입니다. 장소 MAK 뮤지엄 기간 5월 3일까지 인스타그램 @mak_vienna
V&A, <Schiaparelli, Fashion Becomes Art>
오는 3월 빅토리아 앤 앨버트 뮤지엄(V&A)은 영국 최초로 스키아파렐리를 집중 조명하는 특별전을 개최합니다. 20세기 혁신적인 패션 디자이너로 꼽히는 엘사 스키아파렐리의 일대기와 하우스의 현재를 조명합니다. 평범한 물건을 옷, 액세서리, 보석으로 바꿔놓으며 무한한 창의성을 구현한 그녀의 아카이브 200여 점을 공개합니다. 신체 골격을 옷 표면에 구현한 스켈레톤 드레스와 살바도르 달리가 만든 패턴으로 완성한 티어스 드레스도 볼 수 있습니다. 장소 V&A 기간 3월 28일~11월 8일 인스타그램 @vamuseum
MoMu, <The Antwerp Six>
1980년대는 아방가르드 패션이 깨어나던 시기입니다. 당시 세계 3대 패션 스쿨의 하나인 벨기에 앤트워프 왕립예술학교를 졸업한 ‘앤트워프 식스’, 곧 6인의 디자이너가 혜성같이 등장했습니다. 드리스 반 노튼, 앤 드멀미스터, 월터 반 베이렌동크, 디르크 비켐베르흐스, 디르크 반 세인, 마리나 이가 주인공입니다. 1986년 런던에서 선보인 ‘브리티시 디자이너 쇼’의 기념비적인 데뷔 40주년을 맞아 첫 대규모 회고전을 선보입니다. 디자이너 6인의 적극적인 협업 아래 기획된 전시는 졸업 작품은 물론이고 스케치, 사진, 언론 자료 등도 함께합니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마리나 이의 작품관을 들여다볼 수 있는 더없이 좋은 기회고요. 장소 MoMu 기간 3월 28일~2027년 1월 17일 인스타그램 @momuantwerp
Design Museum London, <Nigo: From Japan with Love>
도쿄 하라주쿠 뒷골목에서 시작해 세계적인 무대에까지 오른 디자이너 니고의 여정을 보여주는 전시가 런던에서 개최됩니다. 베이프와 휴먼메이드, 빌리네어 보이즈 클럽을 설립하고, 현재 겐조 디자이너로 활동 중인 그는 스트리트 웨어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입니다. 스트리트 웨어를 일시적인 유행이 아니라 디자인 역사의 한 장으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런던 디자인 뮤지엄에서는 5월부터 베이프와 휴먼메이드 설립부터 현재까지 나이키와 협업한 제품, 그리고 겐조에서의 작업물을 선보입니다. 열렬한 패션 수집가로도 알려진 그의 웨어하우스 속 희귀 의류와 그가 10대에 직접 착용한 빈티지 아이템도 공개합니다. 장소 디자인 뮤지엄 런던 기간 5월 1일~10월 4일 인스타그램 @designmuseu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