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상사 길들이기’, 이상하지만 그럴듯한 제목인 이유
남자는 직장 상사다. 여자는 그의 부하 직원이다. 함께 출장길에 오른 두 사람이 무인도에 불시착한다. 이런 내용의 영화 제목이 <직장상사 길들이기>다. 관객 대부분은 당연히 로맨틱 코미디를 예상할 것이다. 그런데 아니다. 굳이 정의한다면 상사와 직원의 관계가 역전되면서 벌어지는 ‘혐관 로맨스’라고 할까?
하지만 <직장상사 길들이기>는 그런 이야기가 아니다. 원제는 ‘Send Help’, ‘구조 요청’이라는 의미다. 게다가 이 영화를 연출한 감독은 <이블 데드>(1981) 시리즈와 <드래그 미 투 헬>(2009) 등을 통해 B급 공포 영화 거장으로 불려온 샘 레이미다. 정보를 찾아볼수록 이 영화는 로맨틱 코미디가 아니라 무인도에서 벌어지는 스릴러에 가깝다. 그런데도 한국에서 개봉하는 영화에는 로맨틱 코미디에나 어울릴 법한 제목이 붙은 것이다. 흥미롭게도 막상 영화를 보고 나면 ‘직장상사 길들이기’라는 제목이 오히려 이 영화에 더 어울린다는 걸 알게 된다. 이 영화의 재미는 그런 어긋난 기대에서 오기 때문이다.
<직장상사 길들이기>는 처음부터 관객의 오해를 유도한다. 두 남녀의 무인도 표류라는 설정에서 로맨스를 상상하게 되는 이유는 이미 그런 이야기가 많았기 때문이다. 가이 리치가 연출하고 마돈나가 출연했던 <스웹트 어웨이>(2002), 해리슨 포드의 <식스 데이 세븐 나잇>(1998), 더 과거로 가면 10대 소년 소녀가 무인도에서 사랑에 빠지는 <블루 라군>(1980)도 있다. 연출자인 샘 레이미 감독 역시 이에 대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이야기 중 하나”라고 말했을 정도다. 캐스팅 또한 로맨틱 코미디를 기대하게 만든다. 레이첼 맥아담스는 <노트북>(2004)으로 ‘제2의 줄리아 로버츠’라는 평가를 받았고, <어바웃 타임>(2013)을 통해 또 한 번 ‘로코의 여신’이 된 배우다. 그런 그녀가 연기한 주인공 린다는 그리 아름답지 않은 데다 인기도 없고, 젊지도 않은 싱글 여성이다. 관객은 아마 그녀에게서 ‘브리짓 존스’ 같은 캐릭터를 떠올릴 것이다. 동시에 <직장상사 길들이기>가 평범하고 외로운 싱글 여성이 무인도에서 진정한 사랑을 찾는 이야기일 거라 예상하게 된다.
하지만 영화는 그런 기대를 부추기다가도 다시 무너뜨리는 줄다리기를 반복한다. 평소 야생 생존 프로그램에 심취했던 린다는 무인도에서도 능숙하게 잠자리와 식량을 구한다. 반면 이 섬에서 하루라도 빨리 나가고 싶은 직장 상사 브래들리(딜런 오브라이언)는 그런 린다의 행동을 ‘소꿉장난’으로 치부해버린다. 그렇다고 해도 부잣집 도련님으로 자란 데다 다리까지 다친 그가 이 섬에서 혼자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결국 그는 그녀의 능력을 인정하며, 갈등은 봉합된다. 두 사람은 서로를 돕기 시작하고, 브래들리가 린다의 목숨을 구해주기도 한다. 역전된 관계는 조금씩 동등한 관계로 바뀌어가고, 무인도는 편한 보금자리와 풍족한 식량이 있는 낙원으로 바뀐다. <블루 라군>을 기억하는 관객이라면, 이들에게서 좀 더 ‘끈적한’ 관계까지 기대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때 영화는 또 한 번 기대를 깨버린다.
샘 레이미 감독은 주로 어떤 힘에 점령당한 인물을 그려왔다. <이블 데드>나 <드래그 미 투 헬>처럼 악령에 씌는 경우도 있고, <스파이더맨 3>(2007)에서 보여준 것처럼 외계 유기체에 감염된 뒤 자신의 능력에 도취돼버린 인물을 그리기도 했다. <직장상사 길들이기>에서 주인공 린다는 자신이 점유한 위치에 집착한다. 평소 자신을 깎아내리고 조롱하던 상사를 찍어 눌러버릴 수 있다는 우월감에 스스로 점령당하는 것이다. 안쓰러웠던 여자는 점점 무서운 여자가 되어간다. 샘 레이미 영화에서 보아온 기괴하고 끔찍한 상황도 이때부터 드러나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영화는 로맨틱 코미디뿐 아니라 스릴러 영화의 익숙한 공식까지 깨며 흥미로운 재미를 더한다. 결말에 이르면 공포 영화 전문 감독인 그가 전문 분야와 가장 거리가 먼 소재를 가져와 자신의 취향을 담아낸 결과물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 <직장상사 길들이기>는 관객이 로맨틱 코미디를 기대할수록 영화에 숨겨진 장치가 더 빛을 발하는 스릴러다. 그러니 관객에게 대놓고 어긋난 기대를 심어주는 ‘직장상사 길들이기’라는 제목은 오히려 샘 레이미의 의도에 매우 부합하는 작명일 수도 있다. 물론 영화를 봐야만 이해할 수 있는 초월 번역이지만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