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고도 낯선 중동, 아직 그들을 만나지 못했을 뿐
2026년 전 세계 미술계가 주목하는 사건이라면, 바로 중동에서 열리는 두 개의 메가 아트 페어일 겁니다. 2월에 카타르 도하에서 열리는 아트 바젤, 그리고 11월 아랍에미리트의 아부다비에서 개최되는 프리즈가 그 주인공인데요. 2025년 초에는 베니스 비엔날레에 새로운 ‘마지막 국가관’인 카타르관이 생긴다는 소식까지 발표되었죠. 이렇듯 중동 미술에 대한 막연한 기대는, 이를테면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근접한 세계>(PROXIMITES) 전시를 통해서 더욱 선명해지고 있습니다. 아랍에미리트의 동시대 미술을 조명하는 이번 전시는 40여 명이 넘는 지역 작가의 작업으로 구성되었는데요. 우리에게는 멀고도 낯선 중동의 현대미술을 일괄할 수 있는 자리가 되지 않을까 싶군요.
제목 <근접한 세계>는 아랍에미리트를 위시한 중동 지역을 향한 우리의 지리적, 심리적 경계를 역설적으로 보여줍니다. 세계화가 발생시킨 즉각성과 밀접함 이면에는 여전히 어떤 거대한 간극이 존재하죠. 그래서 이번 전시가 제안하는, 지역적 특수성과 국제적 가독성 사이에서 서로 다른 만남과 보기의 방식에 대한 탐구가 더욱 흥미롭게 다가옵니다. 서울시립미술관 김은주 학예연구사와 마야 엘 카릴 큐레이터는 세계를 마주하는 태도를 고찰하는 동료 작가들을 모았다고 하는군요. 덕분에 각 섹션의 작품들, 그리고 작가들의 관점이 서로 연결되고 이어지는 지점에서, 오랫동안 우리를 지배해온 편견 이면의 살아 있는 세계를 마주하게 됩니다.
전시장에는 익숙함과 낯섦이 교차하며 빚어내는 풍경들이 있습니다(첫 번째 섹션 ‘회전의 장소’). 우리가 볼 수 있는 것과 볼 수 없는 것들 사이에서, 상상의 힘은 여전히 빛을 발합니다. 한편, 중동 작가들이 포착한, 변화하는 공간 질서도 만날 수 있는데요(두 번째 섹션 ‘지형이 아닌, 거리를 기록하기’). 지도, 좌표, 나침반 등을 ‘권력을 새겨놓는 도구’로 상정한 작업에서 이것들은 오히려 불안정한 형식으로 전환되어 대안적 형상으로 펼쳐집니다. 이러한 ‘가변성’은 다음 섹션인 ‘그것, 양서류’를 통해 ‘변화 가능성’으로 변모합니다. 작가들은 원초적 요소와 혼종성으로의 진화, 양극의 환경에 발 딛고 사는 ‘양서류적 존재’가 되기를 기꺼이 희망합니다.
전시를 설명하는 단어와 문장들은 꽤 현학적이지만, 실제 작업을 보면 그들과 나 사이 장벽이 부지불식간에 사라집니다. 예술은 결국 삶에 대한 이야기고, 간혹 가장 낯선 개념과 대상들이 알고 보면 오히려 가장 가까운 존재였음을 깨달으니까요. 이 낯선 존재들의 작업을 보면서 저는 중동에서 파견 근무를 하는 아버지를 늘 그리워하던 어린 시절 친구가 떠올랐습니다. 그 아이가 가끔 자랑했던 다양한 기념품들이 기이할 정도로 이국적이었던 기억도 함께 말이죠. 당시 나는 막연히 그들과 내가 매우 다른 사람이라 생각했지요. 수십 년이 지난 지금 만난 예술 작품들은 그들이 역시 나와 근접한 곳에서 각자의 세계를 이루는 존재임을 되새기게 합니다. 우리는 그간, 아직 그들을 만나지 못했을 뿐이죠. 그런 점에서 <근접한 세계>는 중동뿐만 아니라 기억 혹은 개념으로만 존재했던 ‘모든 그들’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 될 겁니다. 전시는 3월 29일까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