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히 예쁜 옷 그 이상, 어거스트 배런의 이상한 패션
뒤틀리고 흐트러진 어거스트 배런의 세계.
“파리에서 본 쇼 중 가장 짜릿했어요!! 에너지가 온몸으로 전해졌습니다.” <보그 비즈니스>의 동료 루시 맥과이어(Lucy Maguire)가 흥분이 그대로 묻어나는 문자를 보내왔다. 파리 18구, 한 석탄 야적장을 개조한 콘서트홀에서 열린 어거스트 배런(August Barron)의 2026 봄/여름 컬렉션 직후였다.
나는 그녀의 문자를 읽은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거스트 배런 쇼 ‘프런트 로’가 아니라 쇼장 근처 주차장에 세워둔 내 자동차의 뒷좌석이었다. 밤 10시 30분으로 예정된 쇼에 참석하기 위해 외곽 순환도로를 타고 총알처럼 달렸지만, 결국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했다. 동료가 ‘지금껏 본 것 중 최고’로 꼽은 바로 그 쇼를 놓친 것이다.
나는 다음 날 오전이 되어서야 어거스트 배런의 마레 지구 쇼룸에서 그 컬렉션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애프터 파티를 조금 오래 즐긴 바람에 혼미한 상태였지만, 여전히 그들의 쇼를 놓쳤다는 사실이 생각나 내내 투덜거렸다.
왜 그렇게 기분이 안 좋았을까? 어거스트 배런은 뉴욕 태생의 벤자민 배런(Benjamin Barron)과 오슬로 출신의 브로르 어거스트 베스트보(Bror August Vestbø)가 이끄는 브랜드다. 5년 전부터 파리에서 활동하는 이들은 엄격하고 진지한 ‘패션 수도’에 반항 정신과 위트를 불어넣고 있다. 그런지 무드에 화려함을 접목한 그들의 디자인은 익숙한 공식을 뒤엎으며, ‘시크함’을 재정의한다. 한마디로 파리 패션 위크에 참석하는 모두가 어거스트 배런의 쇼 티켓을 탐냈다는 의미다.
쇼룸에서 어거스트 배런의 옷을 마주한 순간, 왜 그들이 지금 모두에게 주목받는지 알 수 있었다. 기분이 좋아지고 숙취가 풀리는 것은 물론 안색마저 밝아지는 기분이었다. 분홍빛 태피터 원단을 구기고 꼬아 만든 칵테일 드레스 위에는 레이스, 금속성 다마스크와 얇은 튤 조각을 덧댔다. 밤색 크롭트 폴로 니트는 옆 솔기를 지퍼로 교체해 어깨 뒤에서 엉덩이 앞부분까지 구불구불 옆 선을 따라 부착했다. 네크라인이 여러 개인 레이어드 플래드 셔츠, 작은 꽃무늬 오간자 퍼프볼 스커트는 해류에 떠다니는 해파리처럼 옷걸이에 걸려 있었다.
어거스트와 배런은 일본 여행 중 발견한 빈티지 본디지(Bondage, 상대방을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며 쾌감을 느끼는 페티시즘의 일종) 잡지에서 영감을 받아 컬렉션을 완성했다. 둘은 1950년대 주부들이 밧줄에 묶인 사진을 보며 그 긴장감에 매료됐다. 전형적인 여성상에 대한 전복, 밧줄의 꼬임과 비틀림, 그리고 들어 올린 치마에서 느껴지는 긴장감 말이다. 배런은 흡사 시간이 멈춘 듯 그 순간을 영구 보존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어거스트 배런은 단순히 ‘예쁜 옷’을 선보이는 브랜드가 아니다. 지하철을 타고 쇼룸으로 향하는 동안 나는 그들이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한 쇼 영상을 살펴봤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가정의 거실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쇼장. 아름답게 흐트러진 모습의 주부들이 내려와 군중 사이를 활보하고, 높이 설치된 플랫폼에서 열띤 환호를 받으며 포즈를 취하는 모습. 스프레이를 잔뜩 뿌린 머리 위에 새틴 스카프를 두르거나, 헤어 롤러를 그대로 둔 스타일링. 촉촉한 피부, 진홍색과 파스텔 핑크 혹은 청록색으로 물든 입술도 눈에 띄었다.
쇼에 등장한 모든 모델은 실존 인물처럼 느껴졌다. ‘전형적인 여성상의 전복’을 주제로 한 딱딱하고 허술한 논문을 읽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았다는 뜻이다(메시지를 전하는 것에 급급한 브랜드가 종종 이런 실수를 저지른다). “우리가 선보이는 모든 캐릭터는 익숙하지만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습니다.” 어거스트는 ‘완벽한’ 이미지를 표현하는 동시에 그것을 흐트러뜨릴 방법을 찾고 싶었다고 말했다. 1950년대 주부, 단정하지 못한 모습의 여성 보스, 전성기가 지난 팝 스타. 늘 다른 ‘캐릭터’를 주제로 하는 어거스트 배런의 패션쇼가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 모두 어딘가 흐트러져 있기 때문이다. 어거스트는 그 ‘흐트러짐’이 엄청난 해방감을 선사한다고 설명했다.
오래전부터 어거스트 배런을 응원해온 도버 스트리트 마켓 파리의 구매 및 판촉 책임자 닉 트랜(Nick Tran)은 그들이 세계관을 구축하는 데 능숙하다고 말한다. “배런과 어거스트는 일상적인 물건, 익숙한 의상과 레퍼런스에 새로운 맥락을 부여합니다. 일종의 판타지 세계를 만들어내는 거죠. 어거스트 배런의 옷을 처음 본 순간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마리암 나시르 자데(Maryam Nassir Zadeh)의 뉴욕 매장에서였죠. ‘누구지? 어디 출신일까? 디자인 과정은 어떨까?’ 많은 궁금증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이제 막 그 이름을 접한 사람도 있겠지만, 배런과 어거스트는 얼마 전 브랜드 론칭 10주년을 맞이했다. 지난 시즌까지 그들은 ‘올인(All-In)’이라는 브랜드명으로 활동했다. 시작은 독립 매거진이었다. 바드 칼리지에 재학 중이던 배런은 2015년 뉴욕에서 <올인 매거진>을 창간했다. 당시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를 운영 중이던 어거스트는 창간 기념 파티에서 배런을 만났고, 이들은 곧 ‘비즈니스 파트너’이자 연인으로 거듭났다. 그리고 둘은 지난 8월, 브랜드명을 ‘어거스트 배런’으로 바꾸며 이들이 쌓아온 10년간의 세월을 공식적으로 각인했다.
올인의 컬렉션은 ‘디자인’을 향한 단순한 욕망보다는 배런과 어거스트가 10대 시절부터 쌓아온 빈티지 아카이브를 활용해 잡지에 실릴 만한 옷을 만들고자 하는 욕구로부터 시작했다. “단순한 스타일링 대신 옷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과정을 거치며 새로운 뭔가를 만들고 싶었죠.” 어거스트가 말했다. 조각난 것들을 이어 붙여 완성한 듯한 이들의 옷은 곧 로타 볼코바(Lotta Volkova)와 헤일리 울렌스(Haley Wollens) 같은 ‘슈퍼 스타일리스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어거스트 배런은 이제 완전한 패션 브랜드로 거듭났다. 지난 6월 여덟 번째 이슈를 출간한 <올인 매거진>은 패션계 ‘인사이더’를 위한 일종의 포럼으로 변모했다. 아르카(Arca), 캐롤라인 폴라첵(Caroline Polachek), 찰리 XCX, 알렉스 콘사니 등 많은 ‘잇 걸’이 어거스트 배런과 <올인 매거진>의 팬을 자처한다. 노르웨이 출신의 R&B 듀오 스머즈(Smerz)는 어거스트 배런 2026 봄/여름 컬렉션 음악을 담당했다. 스타일링은 (이번에도 역시) 로타 볼코바가 맡았으며, 메이크업 아티스트 토마스 드 클루이버(Thomas de Kluyver)는 뷰티 부문을 총괄했다.
조금은 무작위적으로 보이는 조합이다. 하지만 바로 이런 부분이 어거스트 배런의 매력이다. 스머즈의 카타리나 스톨텐베르그(Catharina Stoltenberg)와 앙리에트 모즈펠트(Henriette Motzfeldt)는 배런과 어거스트가 예술을 대하는 방식이 무척 독특하다고 설명한다. “그들에게는 어떤 경계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고급문화와 하위문화를 전혀 구분하지 않죠. 배런과 어거스트에게 중요한 것은 결국 ‘재미’입니다. 상징과 고정관념을 다루는 그들의 유쾌한 방식은 우리에게도 많은 영감을 줍니다. 어거스트 배런의 옷은 고전적인 동시에 신선하죠.”
이런 ‘개방성’은 듀오가 협업을 대하는 방식에서도 느껴진다. “배런과 어거스트의 세계는 독창적인 동시에 배타적이지 않습니다. 누구나 함께할 수 있는 세계죠.” 드 클루이버는 어거스트 배런이 모든 종류의 협업에 열려 있다고 설명한다. “두려움을 모르는 친구들이죠. 자기 확신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은 물론, 언제나 솔직한 태도를 유지합니다. 그런 자신감과 수용적인 사고방식의 조합 덕분에 독창적인 디자인을 창조한 공간이 생긴 것 아닐까요?”
어거스트 배런은 2025 LVMH 프라이즈 파이널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우리가 여기서 주목할 점은 그들이 비교적 최근 들어서야 폭발적인 관심을 받게 됐다는 사실이다. 10주년을 맞이한 브랜드지만, 어거스트 배런이 제품을 본격적으로 판매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3년 전이다(당시 그들이 출시한 앞코가 뾰족한 레이스업 부츠는 리한나의 선택을 받았다). 배런과 어거스트는 지난해 처음으로 생산을 목적으로 한 ‘풀 컬렉션’을 선보였다. “한 걸음씩 천천히 나아가고 있습니다. 1년 반 전만 해도 저와 배런은 거실에서 옷을 만들었는걸요!” 어거스트가 말했다.
새로운 체제의 최전선에 서 있을지도 모르지만, 어거스트 배런의 ‘비주류적 투지’는 굳건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 투지가 가장 뚜렷이 드러난 곳은 바로 거대한 홀에서 열린 패션쇼 애프터 파티였다. 낡은 모피 코트를 걸친 패션학도, 타이트한 티셔츠를 입은 소년들, 모두가 함께 작업하길 원하는 유명 사진가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군단이 어거스트 배런을 위해 한곳에 모였다. 모두 루시 맥과이어처럼 ‘짜릿한 경험’을 한 직후였다. 베를린 출신 사진가 겸 디제이 렝구아(Lengua)가 무대 위에서 거친 테크노 비트를 쏟아낼 때 모두와 함께 몸을 흔들며 나는 스스로 다짐했다. 지하철 파업이건 교통 체증이건 다음 어거스트 배런 패션쇼에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참석할 거다! V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