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그 포토 스튜디오 #1,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당신의 웨딩 사진
〈보그 코리아〉 30주년을 기념해 ‘보그 포토 스튜디오’를 열었습니다! 지난 30년간 〈보그〉 콘텐츠를 신뢰하고 애정해준 분들을 위해 마련한 오디언스 참여형 프로젝트입니다. 올해는 매달 다른 주제를 내걸고 독자 여러분을 더 자주 촬영장으로 초대하겠습니다. 여러 오디언스의 지원을 통해, 때로는 가까운 곳으로 직접 찾아가는 방식으로 운영될 보그 포토 스튜디오에 많은 관심과 사연 보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모든 소식은 〈보그〉 웹사이트와 SNS 채널에 공개되니 유심히 지켜봐주세요. 그 첫 번째 보그 포토 스튜디오는 웨딩 사진관으로 변모했습니다. 장소는 선운각. 북한산을 배경으로 계절마다 분위기가 180도 달라지는 이곳에 각자의 사정으로 미처 결혼사진을 촬영하지 못한 다섯 커플을 초대했습니다. 마침 이곳을 결혼식장으로 점찍어둔 예비부부뿐 아니라 장성한 자녀를 거느린 부부까지 차례차례 문턱을 넘는군요. 피할 수 없는 생의 과업 앞에서 결혼사진 촬영을 단념한 후 함께한다는 것 자체가 더 중요하다며 애써 아쉬움을 달랬지만, 근사한 예복을 입고 서로를 수줍게 마주한 이들에게서 설렘과 행복이 묻어납니다. 눈에 잘 보이는 곳에 걸어두고 “가보로 평생 간직하겠다”는 호언장담에 스태프의 손길도 한층 분주하고 신중해졌죠. 저 역시 이들의 특별한 추억 만들기에 동참한다는 사명감으로 이날만큼은 ‘아이폰 스냅 사진가’를 자처했습니다. 모두의 진심이 통했을까요? 다섯 커플이 〈보그〉 카메라 앞에서 더없이 환하게 웃습니다. 함께하니 역시 행복은 배가 됩니다. 2월의 보그 포토 스튜디오에서는 과연 어떤 풍경이 펼쳐질까요?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용상철 & 권은연 & 김지우 & 용지윤 & 금동이
일주일 차이로 거행될 결혼식을 앞둔 자매 김지우와 용지윤에게 보그 포토 스튜디오는 절호의 찬스였다. “결혼식을 치르지 못한 것은 물론 결혼사진 한 장 없는 엄마 아빠를 두고 결혼하려니 마음이 쓰이더라고요. 벌써 재혼한 지 20년이 훌쩍 넘으셨거든요.” 이들의 모친 권은연은 사연을 보낸 큰딸이 “대형 사고를 쳤다”고 표현했지만, 남편 용상철의 마음은 덕분에 한결 가벼워졌다. “늘 마음에 걸렸습니다. 어쨌든 우리 둘 다 한 번씩은 갔다 오기도 했고, ‘나중에 좋은 때가 있겠지’ 하며 미뤄둔 얘기가 갑작스럽게 시작된 아내의 유방암 투병 생활로 기약이 더 흐려졌거든요. 그래도 순서가 있는데, 엄마가 먼저 결혼사진을 찍어야 하지 않나 싶었습니다.” 더디지만 확실한 호전 증세를 보이는 아내가 마침 환갑을 막 넘긴 시점에 찾아온 운명적인 기회. 심지어 자신은 양복을 입고, 아내는 한복을 입었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바람까지 다 이루어졌다. 게다가 아내 권은연은 <보그>의 오랜 팬이다. “40년 전에는 <보그 코리아>가 없었어요. 서점에 갈 때마다 미국판을 열심히 봤죠. 내가 아는 유명 배우는 다 나오던 그 잡지에 우리가 나온다니! 당첨 소식을 들은 날은 잠이 안 오던걸요.” 아쉽게 합류하지 못한 막내아들을 대신해 에너지가 남다른 반려견 ‘금동이’도 촬영에 함께했다. 분위기도, 성격도, 취향도 제각각인 이들이 서로 ‘진짜’ 가족이라고 느끼는 순간은 언제일까? “박 터지게 싸울 때죠!” 사연 신청자인 큰딸 김지우가 대답하자 한 살 아래 동생 용지윤이 거든다. “별거 아닌 일로 서로 삐져서 6개월 동안 연락을 안 하기도 해요.(웃음) 하지만 가족이니까 삐지고, 가족이니까 서운한 거겠죠. 그래도 부모님을 보면서 부부 사이에 대화를 정말 많이 나눠야 한다는 걸 느껴요. 아직까지도 매일 아침 티타임을 갖는 두 분처럼 저랑 언니도 그런 부부가 됐으면 좋겠어요.” 새로운 시작을 앞둔 두 딸의 눈에 용상철·권은연은 세상에서 가장 이상적인 부부다.
임성은 & 김유나
시작은 사소한 만남이었다. 같은 대학 흑인음악 동아리에서 처음 만난 임성은·김유나 커플은 10년 넘게 친구로 지내다가 연인이 되었고, 4년간의 연애 끝에 2018년 5월 20일 혼인신고를 선포했다. 필름에 대한 애착이 깊은 이 8년 차 부부는 어느새 일도 함께 한다. 오드 아이가 매력적인 반려묘 ‘오드’를 길에서 함께 거둔 후 ‘오드네’라는 이름으로 망원동에 개업한 사진관에서 김유나는 학과 전공을 살려 사진을 찍고, 임성은은 현상을 도맡는다. 지극히 자연스럽고 평화로운 전개처럼 들리지만 위기도 있었다. 함께 일하기 전, 웨딩 업계에서 일하던 남편 임성은에게 공황장애가 온 것이다. “이제 와서 아내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당시에는 상황이 정말 좋지 않아 결혼식을 치를 정신이 없었어요. 대신 여행을 가자고 제안했죠. 많이 고민했을 텐데 군말 없이 ‘그래’라고 해주니 너무 고맙더라고요. 지은 죄가 많아 저는 앞으로 정말 잘해야 해요.(웃음)” 싱그러운 눈웃음이 매력적인 아내 김유나가 대수롭지 않은 듯 덧붙였다. “모든 건 때가 있다고 믿거든요. 그땐 결혼식보다 그게 더 중요했어요.” 그렇게 혼인신고를 마치자마자 각자 20kg에 가까운 배낭을 짊어지고 30여 개 나라를 횡단한 2년. <보그> 촬영의 배경을 이룬 수십 장의 사진이 곧 그들의 결혼사진이었다. “아내가 사진을 많이 찍어줬는데, 여행 초반과 후반에 제 표정이 완전히 다르더라고요. 가족과 친구들이 모두 인정할 정도로 상태가 눈에 띄게 좋아졌죠.” 이번에는 임성은이 아내의 소망을 이뤄줬다. “주로 사진을 찍어주는 입장이다 보니 제 사진은 정말 없거든요. 결혼사진을 촬영해준다는 <보그>의 공고를 보자마자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 지원했는데 당첨돼서 너무 행복합니다. 최선의 모습을 남기고 싶어 결심한 식단 관리는 실패하고 말았지만요.(웃음)” 서로의 존재만으로 끊임없이 웃음이 터지는 두 사람이 이날만큼은 주인공이 되어 플래시 세례를 만끽했다.
강호선 & 이순옥
보그 포토 스튜디오에 입성한 최고령 커플(두 사람은 1950년대생이다)이자 분위기 메이커였던 강호선·이순옥 부부. 촬영 내내 남편 강호선이 “배추김치!” “파김치!” “총각김치!”를 번갈아 외치며 분위기를 끌어올린 것은 “좀 웃으라니까!”라는 아내의 주문을 충실하게 이행하기 위함이었다. 이들의 촬영을 적극 지원한 김예주 강북장애인종합복지관 사회복지사가 내 옆에서 그 광경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귀띔했다. “두 분은 우리 복지관 최고의 잉꼬부부세요. 늘 2인용 스쿠터를 꼭 붙어서 타고 다니시죠.” 55년 차 부부인 두 사람은 요즘처럼 행복한 날이 없다고 입을 모은다. 아내 이순옥이 복지관에서 보낸 행복한 일상을 줄줄이 읊는다. “매일같이 아침 8시만 되면 복지관에 간답니다. 친구들이랑 커피 마시고, 꽃꽂이하고, 우리 아저씨는 체력 단련실에서 운동도 하고, 그러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죠. 복지관 덕분에 오늘은 연예인이 된 것처럼 멋진 사진도 찍었군요! 죽을 때까지 못 잊을 거예요.” 두 사람이 맨 처음 만난 곳은 평택. 그로부터 긴 시간이 지났지만 늘 집 밖에 걸려 있던 거울을 보며 머리를 만지고 출근길을 재촉하던 소녀 이순옥의 모습이 강호선의 기억엔 여전히 생생하다. “그 모습에 반해 친구에게 소개해달라고 졸랐죠. 그런데 친구가 그러더라고요. 그 여자 장애인이니까 마음 고쳐먹으라고요. 그땐 제 다리가 이렇지도 않았고, 인테리어 목수로 돈도 잘 벌었어요. 형이랑 형수도 많이 반대했는데, 제가 밀어붙였죠.” 이순옥은 그런 세상을 이해한다. “그때만 해도 장애인이라고 하면 시골에 숨겨놓고 살던 시절이었으니까요. 그렇게 열아홉에 결혼해 몇 년 뒤 두 자녀를 낳고, 손주도 두 명이나 생겼지요.” 13년 전 뇌경색으로 출근길에 쓰러진 남편이 휠체어를 타게 된 후로는 이순옥이 리더 역할을 도맡았다. “이이는 운전면허를 반납해 제가 운전해서 함께 다녀야 해요. 남편이 이젠 제 말에 꼼짝 못하는데 그게 또 얼마나 재미있는지.” 55년 만에 비로소 찍게 된 결혼사진. 이순옥의 기분은 최고조에 달했다. “이제 복지관 가서 자랑하고, 딸하고 며느리한테도 다 이야기해야지요. 이런 화장은 생전 처음 해봤는데, 평생 안 지우고 싶어요!” 내색은 안 하지만, 그 모습을 바라보는 강호선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웃음기가 가득하다.
옥형석 & 바트 아테나
많은 커플이 눈물을 삼키며 이별했던 팬데믹 시기, 한국인 옥형석과 프랑스인 바트 아테나(Bart Athêna)는 오히려 사랑의 결실을 맺었다. 긴 생머리에 푸른 눈이 매력적인 아테나가 꽤 능숙한 한국어로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려줬다. “SNS로 연락을 주고받다가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2년 2월, 서울에서 처음 만났어요. 제가 한국에 교환학생으로 오게 됐거든요.” 패션 잡화 브랜드에서 MD로 활약 중인 옥형석은 당시에도 회사원이었다. 두 사람의 나이 차이는 열두 살. 최근 혼인신고를 마친 이 부부는 2026년 하반기에 한국에서 결혼식을 올린다. “테나가 교환학생에 이어 워킹 홀리데이로 2024년에 다시 한번 한국에 오고, 저도 프랑스로 두 번 정도 갔지만 3년 넘게 교제하면서 사실상 절반 이상은 떨어져 지냈죠. 하지만 그만큼 서로에 대한 믿음과 이해가 깊다고 여겼기 때문에 결혼을 결심하게 됐습니다. 원래 결혼 생각이 없었는데, 테나를 만난 후 신기하게 2세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더라고요.” 아테나 역시 옥형석이 좋은 남자 친구를 넘어 좋은 가족이 될 거라고 예감했다. “저랑 잘 맞고, 잘해줘요. 제가 성격이 조금 예민한 편인데 잘 받아주고요. 그런 모습을 지켜보며 형석이 자연스럽게 좋은 아빠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원래 결혼과 출산을 일찍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거든요. 부모님과 언니도 처음에는 걱정하다가 형석이를 직접 만난 후 응원해주더라고요.” 국제 관계를 공부하고 뷰티계에도 관심이 많은 아테나가 한국에서 새로운 도전을 꿈꾸는 지금, 옥형석은 가족으로서 가장 든든한 지원군을 자처한다. “이제 여자 친구보다는 와이프나 여보라는 호칭이 더 가깝게 느껴져요. 확실히 책임감이 생긴 것 같아요.” <보그 코리아> 구독자인 회사 동료의 추천으로 찍게 된 이번 결혼사진은 이들이 부부로서 치르는 첫 번째 의식. 마침 화보 촬영이 진행된 선운각을 결혼식장 후보 1순위로 눈여겨보던 아테나는 공간 구석구석을 누구보다 세심히 살피며 장밋빛 미래를 가늠했다. “한국에서는 결혼식을 꼭 한옥에서 치르고 싶거든요. 오늘 촬영을 위해 나름대로 연습도 많이 했는데, 행복한 추억을 만들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이승호 & 채리
오는 2월 28일 결혼식을 올리는 예비부부. 그윽한 분위기가 닮은 두 사람은 5년 전, 재즈 바에서 처음 만났다. “그러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팬데믹이 터졌고, 업무 스트레스가 극심해지면서 결국 이별하게 됐어요. 그러다 2년 전 재회했죠.” 남편 이승호의 말에 아내 채리가 예상치 못한 설명을 더한다. “외모도 너무 제 스타일이었고, 솔직한 성격도 처음부터 마음에 들었어요. 그래서 제가 좋다고 쫓아다녔는데 도망가더라고요! 드디어 결혼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요.” 재회가 성사된 장소 역시 재즈 바. 하지만 이번에는 분위기가 진지했다. 그 후 서울숲재즈페스티벌을 비롯해 온갖 콘서트와 공연장을 다니며 두 사람의 관계는 빠르게 깊어졌으니까. 연애하는 2년 동안 각자의 가치관과 라이프스타일이 평화롭게 화합하는 것을 느끼며 이승호는 결혼을 결심하게 됐다. “원래 비혼주의에 가까웠는데 놀라운 변화죠. 아내가 실용적인 면이 많아요. 제가 40대이기도 하고, 가족과 주변의 부담을 최대한 덜고자 ‘스드메’와 결혼사진 촬영을 생략했는데 전부 잘 조율해줬죠. 물론 그럼에도 타협해야 하는 것들이 있었지만, 아내가 잘 맞춰주고 이해해줘 고마워요.” 채리 역시 이승호를 만난 후 달라진 자신의 모습이 꽤 마음에 든다. “저는 ‘집순이’인데, 오빠 덕분에 계속 밖에 나가다 보니 물들었어요. <보그> 촬영도 저라면 엄두도 못 낼 일인데 함께라서 용기를 냈죠. 만나면서 처음 경험한 게 정말 많아요. 소중한 추억이 많이 생겼죠.” 충분한 시간 동안 서로를 신중하게 탐색하며 어떤 위기가 닥쳐도 믿고 나아갈 상대의 진면목을 확인한 두 사람은 이제 평온한 마음으로 디데이를 고대하는 중이다. 감정적이고 즉흥적인 편이던 이승호가 바라는 안정된 삶, 채리가 꿈꾸던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성숙한 관계가 함께 맞잡은 손안에 이미 쥐어져 있다. V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