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Декабрь
2025

가죽의 언어가 향이 된 순간, 크리스챤 디올 ‘뀌르 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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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챤 디올의 프란시스 커정이 재해석한 부드럽고 관능적인 가죽의 언어, ‘뀌르 새들’.

향수병을 처음 열 때의 설렘이란!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향에 대한 기대감, 체온과 만나 어떻게 달라질지에 대한 궁금증. 특히 ‘가죽’이라는 단어가 붙은 향수 앞에 서면 그 설렘은 조심스러움과 뒤섞이기 마련이다. 가죽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으니까. 바 한구석, 위스키 잔을 든 누군가··· 스모키하고 묵직한, 조금은 공격적이기까지 한 향.

크리스챤 디올 뷰티가 레더 향수의 오래된 통념을 뒤집었다. 라 콜렉시옹 프리베 크리스챤 디올 컬렉션이 새롭게 선보이는 ‘뀌르 새들(Cuir Saddle)’은 레더가 지닌 또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견고하면서도 부드럽고, 시간이 지날수록 착용자에게 맞춰지는 가죽 본연의 특성처럼 ‘뀌르 새들’은 우리 모두의 피부에서 숨 쉬며 변화한다. 문득 그 창조의 여정이 궁금해졌다. 2021년부터 크리스챤 디올 퍼퓸을 이끌고 있는 퍼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프란시스 커정(Francis Kurkdjian)과 <보그 코리아>가 대화를 나눴다.

“가죽 향이 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고 싶었어요.” 파리 사무실, 책과 유리병으로 빼곡한 벽 앞에서 검은색 터틀넥을 입은 커정이 카메라 너머로 나타났다. “전통적인 레더가 지닌 관능미를 빛으로 가득 채운 현대적인 방식으로 재해석하고자 했죠.” 부드러운 빛으로 가득 채운 레더라니! 이 역설적인 표현이 ‘뀌르 새들’의 본질을 관통한다.

라 콜렉시옹 프리베는 크리스챤 디올의 꾸뛰르 컬렉션을 향수로 번역한 결과물이다. 2004년 에디 슬리먼의 아트 디렉션 아래 처음 세 가지 향으로 시작된 이 라인은 크리스챤 디올이라는 인물의 개인적 취향과 철학을 후각적으로 번역하는 시도였다. “크리스챤 디올은 단순히 꾸뛰리에만은 아니었어요. 문화적 아이콘이었고, 프랑스의 우아함과 여성성의 재탄생을 대표했죠. 저 역시 향수를 단순한 상품이 아닌 예술품으로 접근합니다. 향은 기억과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직접적인 매개체니까요.” 프란시스 커정은 디올이 실크나 벨벳을 대하는 것과 원료를 다루는 방식이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디올의 꾸뛰르 코드를 향수로 전환할 때 저는 구조, 균형, 감정을 가장 중요하게 여깁니다.”

‘뀌르 새들’은 디올 하우스의 상징적인 액세서리, 새들백에서 출발했다. 존 갈리아노가 2000 봄/여름 컬렉션에서 말안장의 클래식한 라인을 과감히 재해석해 탄생시킨 가방이다. 비대칭적이면서도 완벽하게 균형 잡힌 형태, 인체의 곡선을 따라 자연스럽게 안기는 구조. “가방을 팔 아래에 끼고 다니면 몸의 곡선을 따라 흐르며 피부에 닿는 감각이 느껴지죠.” 프란시스 커정이 설명한다. “향수도 그렇게 만들고 싶었습니다. 피부에 스며들어 나의 일부가 되는 것처럼 말이죠.”

커정은 새들백의 유기적인 곡선과 볼륨감, 가죽의 질감을 후각적 언어로 옮기는 작업에 착수했다. 실제로 향을 경험해보면 그런 의도가 정확히 구현되었음을 알 수 있다. 첫 스프레이에서 레더가 느껴지지만, 전혀 부담스럽지 않다. 캐시미어 스웨터를 입은 것처럼 부드럽고 따뜻하다. 비밀은 섬세한 균형에 있다. “레더를 더 부드럽게 풀어 유연함을 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벨벳 같은 스웨이드 느낌을 구현했죠.” 그는 레더의 양을 줄이는 대신 플로럴과 머스크를 풍부하게 배합했다. 특히 화이트 플라워의 광채가 인상적이다. 스모키하고 우디한 베이스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그 위로 크리미한 플로럴과 세련된 머스크가 얹히면서 전혀 다른 차원의 향이 완성되었다. 향의 여운이 길게 남으면서도 섬세하고, 관능적이면서도 부드러운 느낌을 만들어낸다. “레더가 느껴지지만, 그것만 있는 건 아니에요. 또 다른 뭔가가 함께 존재하죠.” 프란시스 커정의 말처럼 이 향수는 레더 향수이면서 레더 향수가 아닌 절묘한 지점에 있다.

커정이 향수를 만드는 방식은 ‘스토리’다. 스토리와 키워드를 향으로 풀어내는 것이다. ‘뀌르 새들’은 디올의 잇 백을 대담한 향으로 표현한 ‘라 콜렉시옹 프리베’의 신작이다.

이런 현대적 해석의 이면에는 레더 향수가 품은 긴 역사가 있다. 고대부터 사람들은 가죽 특유의 거친 냄새를 감추기 위해 로즈, 머스크, 스파이스, 우드 향을 발랐다. 그것이 오늘날 레더 어코드의 시작이었다. “전통적인 레더 어코드의 역사는 놀랍도록 황홀하죠.” 프란시스 커정이 말을 이었다. “오늘날 레더 향수를 만든다는 것은 꽤 특별한 작업입니다. 현대적인 합성원료 덕분에 레더 향수의 세계를 넓히고,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할 수 있었죠.”

세계적인 조향사의 일상은 어떨까? 의외로 그에게 엄격한 루틴은 없다. 잠에서 깨면 뜨거운 물 한 잔을 마시고, 매일 아침 7시부터 8시까지 운동을 한다. 그렇다면 영감은 어디에서 올까? “영감은 도서관이나 음악회 같은 특정한 장소에서만 오진 않습니다. 지금 이 시간을 살아가며 새로운 경험에 마음을 열어두는 것이 중요하죠. 영감은 정말 다양한 곳에서 찾아오거든요.” 결국 삶 자체가 영감의 원천이라는 이야기다.

프란시스 커정은 향수가 강해야 하고, 대담해야 하며, 분명한 메시지를 전해야 한다고 믿는다. “향수를 만들 만큼 강렬한 코드인지를 먼저 봅니다. 모든 것이 향수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향수는 강해야 하고, 대담해야 하며, 어떤 메시지를 전해야 합니다. 흥미로운 요소라도 그것으로 향수를 만들 수 있을 때만 의미가 있어요.”

‘뀌르 새들’은 바로 그런 향수다. 레더 향수의 역사를 존중하면서도 과감히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다. 디올의 꾸뛰르 정신이 투명한 병에 담겨 향으로 구현된 것이다. 무겁고 진중한 대신 밝고 세련되며, 강렬한 대신 부드럽고 관능적이다. 2026년 1월, 이 향수를 경험하는 순간 신세계가 열릴 것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기분 좋은 미소를 띠고 있을지 모른다. 이것이 바로 크리스챤 디올이 선사하는 마법이다. 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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