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대표 하우스의 런던 나들이, 구찌 2025 크루즈 컬렉션
런던은 구찌에 ‘제2의 고향’과도 같습니다. 당장 하우스 탄생부터 밀접한 관련이 있죠. 어린 시절 런던 사보이 호텔에서 포터로 일하던 구찌오 구찌가 상류층 고객의 수트케이스와 차림에서 큰 영향을 받아 구찌를 창립했으니까요. 사바토 데 사르노 역시 런던의 모든 것에 매료됐습니다. “런던은 저를 환영했고, 제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습니다”라고 말하는 그가 2025 크루즈 컬렉션을 선보일 장소로 테이트 모던을 선택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죠.
비비안 웨스트우드와 알렉산더 맥퀸 같은 전설적인 디자이너들이 꽃을 피운 곳으로 새빌 로와 센트럴 세인트 마틴이 있는 도시, 런던의 정체성이자 런더너의 스타일은 ‘부조화의 조화’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값비싼 옷에 싸구려 빈티지 피스를 매치하거나 상반된 무드의 아이템을 조합하는 것이 런던 패션의 특징이죠. 구찌의 2025 크루즈 컬렉션에서도 이런 믹스 매치의 멋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바토 데 사르노 역시 컬렉션을 통해 극단적이고 서로 반대되는 것 사이에서 조화를 찾고 싶었다고 밝혔죠.
이런 의지는 첫 번째 룩에서부터 드러났습니다. 구찌 로고가 조그맣게 새겨진 스웨이드 블레이저에 시어 소재 셔츠와 데님을 매치했죠. 클래식, 보헤미안 시크, 캐주얼이 공존하는 룩이었습니다. 데이지를 수놓은 시스루 스커트에 데님 풀오버를 조합한 룩도 역시 같은 맥락이었죠.
이브닝 웨어를 더 현실적이고 일상적인 방식으로 재해석한 룩 역시 눈에 들어왔습니다. 우아한 실루엣의 롱 드레스를 편안한 소재로 만든 것은 물론 1950년대풍 이브닝 재킷에 워싱 데님 스커트를 매치했죠.
사바토 데 사르노는 영국적인 것에 이탈리아의 정신을 담고 싶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크루즈 컬렉션에는 프린지를 더한 슬립 드레스와 아우터 재킷이 반복적으로 등장했는데요. 정교한 수작업을 요하는 디테일을 선보이며 이탈리아 특유의 장인 정신을 뽐내는 동시에, 스코틀랜드에서 유래한 타탄 체크 패턴을 표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팬츠에 달린 얇고 긴 프린지는 ‘런던’ 하면 빼놓을 수 없는 ‘비’를 닮아 있었고요. 모델들이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찰랑이던 프린지는 시각적인 만족감 역시 선사했습니다.
사바토 데 사르노가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된 지 벌써 1년 3개월이 지났습니다. 이번 크루즈 컬렉션은 그가 구찌에서 선보인 네 번째 결과물이었죠. 서서히 하우스에 자신만의 색깔을 입혀가는 가운데, 그의 시그니처라고 부를 만한 아이템이 등장했습니다. 초커나 스카프 같은 액세서리가 바로 그것이죠. 2024 S/S 컬렉션에는 볼드한 초커, 2024 F/W 남성복과 여성복 컬렉션에는 일제히 스키니 스카프가 등장했습니다.
이번 컬렉션의 주인공은 진주 목걸이였습니다. 하우스의 상징 중 하나인 랍스터 클래스프(Lobster Clasp) 디테일을 더해 편리하게 두르고 벗을 수 있는 아이템이었죠. 진주 목걸이는 얇은 소재의 푸시 보우와도 더없이 훌륭한 조화를 이뤘습니다.
크루즈 컬렉션의 가장 큰 특징은 패션 위크 기간에 진행되는 컬렉션보다 상업성을 띠고 있다는 점입니다. 팔릴 만한 아이템을 디자인하는 것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는 뜻이죠. 홀스빗을 더한 발레리나 슈즈에서는 사바토 데 사르노의 수완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하우스의 아이덴티티를 잃지 않으면서도 트렌드를 적절히 반영하기 위한 한 수였습니다.